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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1월 묵상글]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 - 어재우 아브라함 수사 22-01-04




저는 얼마전 아씨시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아씨시는 제가 있는 로마 특유의 혼잡함과 소음과는 정반대인 중세 스타일의 마을로 침묵과 평화가 가득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마을이며 또 글라라 성녀의 마을이기도 합니다저는 매번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특히 장미 성당을 방문하여 가시없는 장미꽃들을 보거나장미 성당 옆 복도에 있는 하얀 비둘기 한 쌍을 볼 때면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졌던 마음의 온유함을 느끼게 됩니다이렇듯흔히 “아씨시” 하면 프란치스코 성인을 생각하거나또는 글라라 성녀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아씨시 장미성당에서 찍은 동영상)

 

하지만전 이번에야 아씨시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습니다바로 2020년에 “하느님의 종” 으로 시성된 복자 까를로 아쿠티스 (Carlo Acutis)를 알게 된 것입니다이 복자의 시신은 여기 아씨시 마을에 안치되어 있으며, 저와 같은 1991년에 태어난 청년입니다. 까를로의 시신은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스니커즈를 신은 우리 시대의 평범한 청년의 모습입니다이 복자의 모습은 인터넷이나 유투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진정한 우리 시대의 청년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저는 저와 동갑인 까를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여 까를로의 어머니가 아들에 대해 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까를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 것에 있어서 좋은 모범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자 까를로에 대한 한국 뉴스)

 

까를로의 특별함은 오히려 특별함이 없다는 것에서 그 특징이 있습니다까를로는 저 같은 수도자나 사제도 아니었고평신자로서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고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었던 평범하고 활기찬 소년이었습니다이 친구는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급성 백혈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처럼 죽음을 마치 “누이” 처럼 하느님께 다가갈 때 우리가 겪어야 하는 한 과정으로 여기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려 노력을 하였습니다.

 

까를로는 5살 때부터 성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그는 8살의 어린 나이에 주교님께 특별 요청을 하여 첫 영성체를 일찍 모셨으며그 후로는 매일 미사에 항상 참여했다고 합니다까를로의 부모님은 사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카톨릭 신자는 아니었습니다까를로의 어머님은 까를로가 신앙에 눈을 뜨기 전까지 단지 세 번 미사를 보았다고 합니다세례 받을 때 한 번첫 영성체 모실 때 한 번그리고 혼배 성사 때 한 번 이렇게 평생 세 번 미사를 보았다고 합니다하지만까를로가 계속 미사에 가길 원하고 신앙에 대한 질문을 하다 보니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미사도 더 자주 가게 되었고점점 어려워지는 아들의 신앙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신학까지 공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이렇게 까를로가 가족들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은 바로 신앙이었다고 어머니는 본인의 책에서 설명합니다.

 

까를로의 여러 명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L’Eucaristia è la mia autostrada per il cielo.”

제게 있어서 성체성사는 천국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

 

까를로는 성체성사를 사랑했으며 성체를 통한 예수님과의 만남을 아주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까를로는 조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살았는데, 그는 밤마다 몰래 집에 있는 옷들과 먹을 것을 챙겨서 가난한 사람들과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습니다. 이런 선행은 아무도 모르게 지속되었는데계속해서 없어지는 옷들과 음식을 보고 눈치 챈 어머니는 그런 까를로를 그냥 모른 척하고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까를로의 선행 때문에 까를로의 시신은 아씨시의 옷 벗음 (Chiesa della Spogliazione성당” 에 모셔져 있습니다이 성당의 이름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의 아버지 앞에서 옷을 벗어드린 유명한 일화에서 유래합니다프란치스코 성인의 아버지 삐에뜨로 베르나르도네 (Pietro Bernardone)는 옷감과 천을 팔던 상인이었는데한번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추위에 떨던 가난한 이들에게 가게에 있던 모든 옷들을 내주었다고 합니다이에 당연히 성인의 아버지는 매우 화를 냈으며가난한 삶을 선택한 젊은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 여러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하지만 프란치스코는 완강하게 자신의 생각을 지켰으며 아버지는 최후의 수단으로 도시 집정관들에게 아들을 데려가 상속권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고결국 아씨시 주교님 앞에서 상속권에 대한 재판을 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프란치스코는 이 재판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했으며심지어 자기가 입고 있던 옷도 그 자리에서 벗어 아버지께 돌려드리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이제부터 저는 피에뜨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하늘에 계신 아버지만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는 상속권도 포기하고 부친과 절연 한 후 가난한 이들나병 환자들과 함께 지니며 2년간 아씨시에서 구걸하며 살았다고 합니다까를로나 프란치스코는 모두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나누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까를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특히 재능이 뛰어났으며 10살 때 이미 인터넷 홈페이지를 디자인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그 때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영성체 기적들을 설명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으며 이 홈페이지(까를로의 성체성사 홈페이지)는 아직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까를로가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이웃 사랑을 실천했던 이유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추상적인 존재가 아닌현존하시는 분으로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며 지낼 때 우리의 삶은 변화할 것입니다이웃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은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당신의 첫 번째 회칙서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Deus Caritas Est)” 를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인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너무나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


천주교 신자의 정체성은 교리 지식이나고결한 결심 이전에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특별하면서도 별로 특별하지 않은 내 동갑내기 까를로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신앙인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